CELGEN 7. 때로는 눈을 감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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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761 작성일 2021-10-13 16:16본문
망막박리는 눈의 안쪽 벽에 시신경과 연결된 망막이 떨어져 나가는 병이다.
망막이 떨어지면 사물의 상이 뇌로 전달되지 못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급성 망막박리는 하루 이틀 안에 망막이 완전히 떨어져 실명을 부른다.
복구가 불가능하니 부지불식간에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오래 전 망막박리를 경험한 적이 있다.
시야의 아래쪽부터 검은 막이 생겨서 점점 위로 올라가더니 급기야는 거의 대부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됐다.
병원에 찾아가니까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몇시간에 걸쳐 망막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대수술을 받았다.
집도의는 망막박리 수술을 ‘안과의 개심수술’이라고 불렀다.
수술을 마치고 깊은 잠에 들었다가 아침에 눈을 떴다. 두 눈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안정을 위해 눈 양쪽을 붕대로 칭칭 감아놓은 터였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새소리가 들렸다. 온 방안을 진동하는 알람 소리에도 꿈쩍않던 내가 새소리에 잠을 깨다니.
가만히 누워서 새소리를 들었다. 참새 같기도 하고 찌르레기 같기도 했다.
새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까악 까악하는 까마귀 소리가 아니면 구분도 잘 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짹짹 소리의 반복에 불과했는데 계속 듣다보니 묘한 리듬이 느껴졌다.
새들은 짹...짹...짹... 하다가 잠시 조용하더니 갑자기 짹짹짹짹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짹 째~액 하면서 누구에게 속삭이듯이 울기도 했다.
새소리가 이렇게 다양한 줄은 미처 몰랐다. 머리 속에서 ‘짹’이라는 단음으로만 구성된 에세이가 써졌다.
참새 가족들의 아침 밥상머리 대화같기도 했고, 사랑하는 짝과의 데이트 같기도 했다.
그 이후로 두 눈을 가린 채 보낸 사흘은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안방 문닫는 소리와 욕실 문닫는 소리가 다르다는 사실, 옆 집 개는 저녁 시간마다 찡얼거리는 소리로 짖는다는 사실,
식사를 하다 젓가락을 테이블에 놓을 때 누구는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데 다른 누구는 금속이 유리에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는 사실…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나는 불과 사흘 만에, 앞이 보이지 않아도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 이후 가끔 일부러 눈을 감고 주변의 소리와 촉감, 또는 분위기를 느껴보곤 한다.
눈을 감고 10초만 가만히 있다 보면 온몸의 감각이 눈의 상실을 대신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처음에는 손목시계 초침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방안의 미세한 온도 차이와 냄새까지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사소한 기억의 조각까지도 되살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어제 저녁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별 관심 없이 지나쳤던 것들,
옆 테이블 사람의 헤어스타일이나 친구 얼굴에 난 작은 상처 같은 것들 말이다.
단지 두 눈을 감는 것만으로 24시간 전 또는 몇주 전에 내 앞에서 벌어진 장면을 고스란히 리플레이 할 수 있다.
우리는 자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두 눈을 뜨고 수많은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산다.
짧은 순간이라도 보이지 않는 상황은 곧바로 공포를 불러온다.
하지만 시각은 정보를 얻는 여러 통로 가운데 별반 나을 것도 없는 한 갈래 길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소리를 듣는 귀의 길도 있고, 감촉을 느끼는 피부의 길도 있다.
콧구멍이 두개인 이유가 냄새의 방향을 감지하기 위한 거라는 말처럼 코의 길 역시 정보를 얻는 중요한 통로다.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사람이 라디오 진행을 하면 십중팔구 훨씬 수월할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답은 거꾸로다. TV 진행자 출신들은 처음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당황하기 일쑤다.
TV에서는 자기 목소리 말고도 수많은 노이즈들이 부족한 점이나 실수를 덮어주지만, 라디오는 오로지 목소리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TV에 나오는 모든 시각 정보, 얼굴, 의상, 배경 같은 것들이 목소리로 전달되는 정보를 방해하는 노이즈들이다.
당연히 보는 이들의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진행자의 실수가 가려지기도 한다. 라디오는 그런 노이즈가 없다.
온전히 목소리에 감각이 집중된다. 한치의 떨림도 허용하지 않는 순수한 소리의 승부다.
사람에게는 이런 물리적인 통로 말고 또 하나의 길이 있다. 바로 마음의 눈이다.
현대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은 이렇게 말했다.
“사진을 찍은 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다.”
한쪽 눈을 뷰파인더에 딱 붙이고 나면 다른 눈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무의식 중에 감게 된다.
그 이유가 마음의 눈에 역할을 양보하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뜬 눈으로는 거리와 초점과 노출과 수평을 보고, 마음의 눈으로는 프레임 속 장면이 만들어 주는 느낌을 감지한다.
생물학적인 눈과 마음의 눈이 손잡고 잡아낸 찰나가 예술로서의 사진 한장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의 사진전이 간혹 열리곤 한다.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사진을 찍을까 궁금하지만 그 분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감성 넘치는 작품들이 자주 눈에 띈다.
분들은 아예 마음의 눈만 열고 사진을 찍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구도나 노출이나 초점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감성을 풍성하게 담을 수 있다고 한다.
붓글씨 쓰는 한석봉과 떡 써는 어머니의 일화가 마음의 눈이 가진 힘을 잘 대변해주는 스토리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살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놓치게 된다. 놓치는 가치는 뜻밖에 막대하다.
사람을 사귈 때도 잘 생긴 얼굴에만 관심을 쏟으면 그 사람의 내면이 가진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렵다.
겉보기에 선남선녀 같은 커플이 오래가지 않아 파경을 맞는 이유는 보이는 것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다.
못생긴 얼굴은 살다보면 정이 들기도 하지만 못생긴 마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레프 톨스토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일, 곧 정신적인 활동을 하찮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 (레프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아무리 바쁜 일상이라도 가끔은 몸의 눈을 감고 마음의 눈을 떠보자.
몸의 눈을 감아서 놓치는 시각정보보다 몇배 소중한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소득은 때로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의 생일일 수도 있고, 몇달 째 일정표의 순위에서 밀리다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실수로 지워진 계획일 수도 있다.
마음의 눈은 현실에 보이는 장벽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에 용기를 불어넣어줄 수도 있고,
현실의 컬러풀한 치장 속에 가려진 진실을 꿰뚫어 보게도 해줄 수 있다.
마음의 눈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봐야만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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