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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gen 6. 당신은 당연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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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870 작성일 2021-09-18 14: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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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되지. 깔보거나 비난해서는 안 되는 거야. 안 그러면 나처럼 돼.

나처럼 사랑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 되는거라고.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헤어지는 건 순간이야.”

(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무소의 뿔, 2017)


우리 모두는 숨 쉬는 데 필요한 공기 못지않게 ‘당연’이라는 또다른 존재에 온통 둘러싸여 살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당연하고, 내 곁에 가족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친구와 선후배와 연인도 당연하다.

당연이란 내가 수고를 들일 필요 없이 존재하는 것들 대부분을 포함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우리는 당황하거나, 슬퍼하거나, 화를 낸다.

엄마가 몸살이 나서 매일 아침 챙겨주던 도시락을 하루 못 챙기게 되면 아이는 엄마 걱정에 앞서 짜증부터 내기 마련이다.

영원히 사랑할 것 같던 연인이 떠나고 나면 사람들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종일 울거나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술을 마신다.

당연은 당연하지 않아지는 순간 그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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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변명>은 일본의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니시카와 미와가 만든 작품이다. 소설과 영화로 나왔다. 

당연한 것의 가치를 몰랐던 한 남자의 얘기다. 영화는 유명작가인 사치오가 아내가 머리를 깎아주는 동안 불평을 늘어 놓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불평은 모르는 사람이 자꾸 전화를 걸어오는데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있는 자리에서 아내가 자기를 예명이 아닌 본명 사치오로 부르는 데까지 이른다.

대학 동기로 만나 결혼한 아내는 찌질한 존재이던 사치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유명 작가로 만들었고,

머리를 직접 깎아 주는 모습이 보여주듯 늘 그늘에 숨어 남편 챙기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아내에게 불평을 늘어 놓는 사치오는 한마디로 유명세의 사치에 빠진,  올챙이 개구리적 생각 못하는 인간이다. 


그에게 있어서 아내는 오래 된 ‘당연’이고 그 당연이 좀 더 지금의 자신에 걸맞게 업그레이드 되지 못한 것이 불만이다.

그러던 아내가 어느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사치오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바뀐다.

자기 삶에 가장 당연했던 존재가 사라지면서 사치오가 겪게 되는 일련의 변화는 스포일러니까 넘어가기로 하자.

저자 겸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결국 ‘당연을 당연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핵심 마저도 너무나 ‘당연한’ 얘기일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치오의 경험은 너무나 극적인 사례지만

우리는 오늘도 별 생각없이 당연을 무시하고 새로운 것들을 찾아 고개를 돌린다.

마고우는 버려둔 채 네트워크를 보강하겠다며 새 친구를 찾아나서는 게 그렇다.

맵고 짠 음식이나 술 담배를 멀리하라는 상식은 지키지 않으면서 온갖 비타민과 건강보조식품을 사먹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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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사람은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도망치지 않고 제대로 슬퍼하고 제대로 울어 ”

“난 어머니 장례식 때 안울었어요. 웬지 눈물이 안 나서. 그랬더니 넌 괜찮냐고….. 난 힘들었어요.”

(사치오가 아내와 함께 숨진 친구의 아들 신페이와 나누는 대화)


내 곁에서 당연한 것이 떠나갔을 때 반응은 갖가지다. 하지만 당연에 대해 편하게 여겼을 수록 슬픔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게 보다 맞는 것 같다.

사치오는 아내를 당연시하고 무시하기까지 했던 과거가 부끄러워서라도 아내의 죽음 앞에 통곡하지 못했다.

반면 함께 교통사고로 숨진 아내 친구의 남편은 달랐다. 사고가 난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눈물을 거두지 못한다.

평소에도 아내의 존재가 주는 당연함을 존중하고 사랑했기 때문일까.

숨진 아내 친구의 어린 아들 신페이의 슬픔은 또다른 모습이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힘들었다고 했다.

어린 아이는 내 곁의 누군가가 떠난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슬픔인건지 뭔지도 모른 채 그냥 갑자기 사라진 가장 거대한 ‘당연’에 혼란에 빠진 셈이다. 


어떤 반응이든 당연함을 떠나보내고 느끼는 회한은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연이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내가 뒤늦게 존중하고 배려하려고  애를 써도 방법이 없다는 것.

몸부림치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어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당연을 무시한 결과다.


“왜 우리는 소중한 것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지. 눈에 보이는 신호를 무시하고, 잡았던 손도 놓아버리고, 언제나 기회를 날려버리죠.

왜 이렇게 맨날 헛발을 디디고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지.” (사치오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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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내 주변을 돌아봐야겠다.

혹시 내게 주어진 당연함을 단지 당연하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평가절하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동안 받아온 사랑과 관심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을 때 나는 견뎌낼 자신이 있는지.

“있을 때 잘 해”라는 흔한 소리가 얼마나 준엄한 경고인지. 


다시 반복해 본다.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되지. 깔보거나 비난해서는 안 되는 거야. 안 그러면 나처럼 돼.

나처럼 사랑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인생이 되는거라고.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헤어지는 건 순간이야……

그러니까 소중한 건 꽉 붙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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